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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3. 23世 〉37. <부정공>근재공휘계영가장(謹齋公諱啓永家狀)
1. 문헌 목록 〉23. 23世 〉39. <부정공>처사휘동하묘표(處士諱東夏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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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부정공>석포공휘근수순의비명(石圃公諱根洙殉義碑銘)
石圃公諱根洙殉義碑銘 余讀明史至清人入關朝士大夫下至賣紙鬻餅乞丐之流或鎰或刃或水或火于于爭死所在塡山谷疑彼簪纓而立於朝者固宜死之若其無命布衣徒行之人何至遽自裁如此及吾身親當夷狄之禍大者滅姓紊紀小者毀形易服一切驅人而禽獸之人能自立而不被迫害者甚難乃知明季殉義之士蚤自見此恥以冠帶而淪於裔戎非徒爲國滅君亡巳也當我韓庚戌之燮慷慨殉義者多矣其以布衣者栽者止數人何寥寥也昇州之住岩坊故有石圃趙公根洙自讀小學孝經時則巳知學貴有本本必自孝悌始及國變作歎曰吾可與鳥獸同群其戴天日乎作詩訣其妻柳氏曰卽尋梅市非辭漢欲入桃源永絶秦又曰叵耐亡國恨未了琴瑟情一死誰能贖後綠再難成書畢以告其仲兄忠洙兄曰是吾志也沐浴更新衣展拜先墓遂相携出門後柳氏携其幼子漢容跡之於高興楓南浦乘船矣以去日祭之實庚戌八月十三日也鳴呼使二公而恥爲俘虜卽入山閉户可也不然携家去他邦可也必欲蹈海而死何也而虜既孥我民籍我土卽入山可逃乎四海腥羶無復淨地卽去之他邦又可保乎憤血腔沸寧寐無吪是其心惟有死最快耳柳氏忍死育孤抱二孫然後絶粒以從藏遺詩未甞出示人至將終付女壻申陽秀意其能有以章之也石圃字泰之死時年二十九其兄字泰淑號石泉先石圃三歲生女壻陽秀謀諸人士將勒石紀其事屬余銘銘曰 烈士殉國何論布衣其跡則微皦志如暉幸公蚤決不被差辱既桎既梏爲魚爲肉亦公不幸不竣皓天快覩冠氛蕩掃入埏鄉人知義高躅可忘招招雙魂于彼海上桂酒蘭漿酹之英爽視此鑱石有泚者顙 乙未孟秋 光山 金文鈺 撰 석포공휘근수순의비명(石圃公諱根洙殉義碑銘) 내가 명나라 사기를 읽어보니 청인이 관문에 들어오자 사대부 이하 종이 팔고 떡 팔며 구걸한 무리가 혹 목을 매고 혹 칼날로 혹은 물과 불에 기탄없이 다투어 죽어 산골짜기를 메웠으니 의심스럽다. 저 현직 대관으로 조정에 선자는 진실로 죽어야 마땅하지만 그 자리도 없고 명도 없으며 포의 도행한 사람이 어찌 문득 이와같이 자결하였는고 내몸이 친히 되놈의 화를 당하여 크게는 성을 없애고 기강을 문란하게 하며 작게는 얼굴을 손상하고 옷을 바꾸며 일체 사람을 몰아 금수가 되게 하고 사람이 능히 스스로 스고 박해를 입지 안한자 심히 어려우니 이에 명나라 말에 순의의 선비가 일찍 스스로 이를 보고 관대로서 되놈의 무리에 빠진 것을 부끄러워 할 것은 한갓 나라가 망하고 인군이 없어진 때문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 대한 경술(庚戌)의 변을 당하여 울분하여 절의에 죽은자가 많았는데 그 포의로서 자재한자 두어 사람에 불과하니 어찌 쓸쓸하지 않겠는가. 승주의 주암방에 석포 조공 근수(根洙)가 있어 스스로 소학과 효경을 읽으며 그때는 이미 학문이 귀하고 근본이 있으며 근본은 반드시 효제로 부터 비롯된 것을 알고 국변을 당하여 탄식하기를 내가 어찌 새 짐승으로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어 하늘의 해를 같이 바라보며 살수 있겠는가 시를 지어 그 부인 유씨를 결별하여 말하기를 성도를 찾은 것은 한 나라를 떠난 것이 아니라 도원에 들어가 길이 진나라를 끊고져 함이다. (卽尋梅市非辭漢 欲入桃源永絶奏) 또 말하기를, 나라 망한 한을 견디다 못해 참아 금실의 정을 다하지 못하오. (叵耐亡國恨 未了琴瑟情) 이내 한몸 죽어감을 어느 누가 보상하리 또 다시 만날 기약 두번 이루기 어려워라. (一死誰能贖 後緣再難成) 다 쓴 뒤에 그 중형 충수(忠洙)에게 고하니 형이 또 이것이 나의 뜻이다. 목용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으며 선산에 성묘하고 서로 손을 잡고 집을 나간뒤에 유씨가 그 어린 아들 한용을 데리고 자취를 따라 고흥 풍남포에 이르니 이미 배를 탄 뒤였다. 간 날로 제사하니 실상 경술(庚戌 一九一○)년八월 十三일이었다. 아! 두 공으로 더불어 포로된 것이 부끄러우면 곧 산에 들어가 문을 막는 것이 옳을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집을 이끌고 다른 나라로 가는것도 가한데 반드시 바다를 건너 죽고자 한것은 무슨 일인가. 되놈이 이미 우리 호적과 토지를 탈취하였으니 곧 산에 들어 도망이 가하겠는가. 사해(四海)가 피 비린내가 나서 조촐한 땅을 회복한 곳이 없으니 다른 나라로 가서 가히 보존 하겠는가. 분한 피가 창자에 끓어 차라리 자고 움직이지 아니한 것이 옳으나 그럴수 없으니 그 마음이 오직 죽는것이 가장 꽤하였다. 유씨가 죽기를 참고 고아를 기루어 두 손자를 본 뒤에 식음을 끓고 유서를 감추고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더니 장차 운명할 때에 그 사위 신양수(申陽洙)에게 보이니 그 능히 문자를 두고자 한 뜻이 있었다. 석포의 자는 태지로 죽을때 나이 二十九세요 그 형의 자는 태숙이며 호는 석천인데 석포보다 三년 먼저 출생하였다. 사위 양수가 모든 인사와 의론하여 장차 돌을 깎아 그 일을 기념하고자 나에게 명을 부탁하니 새겨 말하기를, 열사의 순국함이 어찌 포의를 의론하랴, 烈士殉國 何論布衣 그 자취는 적으나 밝힌 뜻이 빛나도다. 其跡則微 皦志如暉 다행히 공은 일찍 결처하여 부끄러운 욕을 아니 입었다. 幸公蚤決 不被羞辱 이미 구명이 뚤리고 수갑 질여 어육이 되었다. 既桎既梏 爲魚爲肉 또 공이 불행하여 하늘의 심판을 기다리지 아니하였다. 亦公不幸 不竢皓天 쾌히 도적의 재앙을 보고 팔황을 소탕하였네. 快視宼氣 蕩掃八珽 고을 사람이 절의를 아니 높은 업적을 가히 잊으랴 鄉人知義 高躅可志 손짓으로 두 영혼을 저 해상에 부른다. 招招雙魂 于彼海上 계수나무 술과 난초 초장으로 영상하게 강신하니 桂酒蘭漿 酹之英爽 이 새긴 돌을 보면 이마에 땀이 흐른자 있을 것이다. 視此鑱石 有泚者顙 광산(光山) 김문옥(金文鈺)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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